지난 1월 22일 유럽 식약청(European Medicines Agency)은 시부트라민(sibutramine)의 시판을 금지시켰다. 시부트라민은 리덕틸, 슬리머 등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비만치료제이다. 유럽 식약청의 결정은 지난 6년동안진행된 스카우트 (SCOUT)라 불리는 임상시험의 결과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스카우트는 55세 이상의 심순환기질환에 대한 위험이 높은 10,742명의 환자들(당뇨병 또는 관상동맥 질환등의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부트라민의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영향을 알기 위해6년간 진행한 시험이었다. 이 시험에서 시부트라민을 투여받은 환자들의 11.4%가, 가짜약을 투여받은 환자들은 10%가 심순환기 질환 (심근경색, 중풍 등) 이 나타났고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이었다.
유럽식약청은 스카우트 시험을 바탕으로 시부트라민으로 받는 혜택에 비해 위험이 크다는 것을 시판금지 결정의 근거로 들었다. 즉, 시부트라민은 체중을5% 정도 떨어뜨리는 데에 비해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시부트라민의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위험은 그 전에도 논란이 되어왔다. 그 이유는 이 약이 중추신경에 작용하여 교감신경을 자극함으로써 혈압과 맥박을 모두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높은 혈압과 빠른 맥박은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들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FDA는 스카우트 시험결과가 공식적으로 출판될 때까지 시판중단여부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는 대신, 심순환기질환 을 시부트라민의 금기 (contraindication)에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식약청도 FDA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정 – 당분간 시판유지,안전성 서한 발송 – 을 내렸다.
자, 시부트라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유럽 식약청의 결정을 지지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다른 비만치료제들과 마찬가지로 시부트라민은 체중감량의 효과는 크지 않다 – 5% . 물론, 체중이 조금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위험이 감소하기는 하다. 하지만, 스카우트 시험에서 시부트라민은 적어도 심순환기 질환에 위험이 높은 환자들에게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켰다. 심순환기질환에 대한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체중을 줄였는데 오히려 심순환기 질환에 대한 위험이 늘어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스카우트 시험에서 시부트라민은 고위험군에서 가짜약에 비해 심장질환에 대한 위험도를14% [(11.4-10)/10 x 100] 증가시켰다. 고위험군에서위험도 증가가14%라면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스카우트 시험결과로부터 우리는 시부트라민을 약 72명 (1/0.014)에게 투여하면 그 중 한 명은 심순환기 질환에 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72명을 해를 끼치기 위한 숫자 (number needed to harm)이라고 한다. 아스피린을 50-70명의 환자에게 투여해야만 심순환기 질환을 한 사람 덜 생기게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카우트 시험에서 나타난 시부트라민의 위험은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 임상에서 우리가 체중을 감소하고 하는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는 심순환 질환의 발생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스카우트 시험 이전에는 시부트라민이 임상에서 실제로 중요한 지표 (outcomes), 예를 들면, 질환의 발생률과 사망률 등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었다. 대신 시부트라민에 의한 체중 감소에 관한 시험 결과들만 있었다. 따라서, 그간 우리는 체중이 낮아지면 심순환기 질환 발생률도 낮아지겠거니 하는 가정하에 시부트라민을 사용해 왔고 스카우트 시험은 그 가정이 틀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고 반드시 심순환기 질환의 발생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고지혈증 약에 따라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 최근 임상시험 결과들을 볼 때 더욱 그렇다.
- 우리나라 식약청은 아직 시부트라민에 의한 중요한 부작용이 식약청에 보고된 바가 없다는 것을 시판 유지 결정의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식약청으로의 약물 부작용 보고는 의사, 약사, 간호사, 환자 등의 자발적인 보고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보고되지 않는다. 이것은 약물 부작용에 대한 보고체계가 잘 되어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시부트라민이 필요한 환자들은 심순환기질환에 대한 위험이 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보고가 있더라도 이것이 시부트라민 때문인지, 아니면 환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위험 때문이었는 지 알기가 힘들다.
- 많은 비만 환자들은 고혈압, 당뇨병 등을 같이 가지고 있어 심순환기질환에 대한 위험이 크다. 따라서, 상당수의 환자들이 시부트라민에 의해 심순환기 질환의 위험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식약청은 허가 사항대로 시부트라민이 사용되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약이 일단 허가를 받아 시장에 풀리게 되면 허가 받은 사항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금기 사항 조차도 잘 안 지켜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많은 비만 환자들이 시부트라민에 의한 해를 받을 가능성, 그리고 허가 사항대로 사용하는 지를 강제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시부트라민이 식약청의 바람대로 사용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 미국의 경우 시부트라민은 향정신성 의약품 (C-IV)으로 분류되어 사용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시부트라민의 사용을 제한하기에는 어려움이 더 크다.
비만치료 (?) 제들은 그 효과가 부풀려져 있으며 대부분은 임상 지표에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알려져 있지 않다. 또, 많은 비만치료제들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비만은 약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규칙적인 운동 등의 생활습관의 변화를 통해 조절해 나가야 하는 질병인 것이다.
증가하는우리나라의비만 인구에 비추어 볼 때,하지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수의 비만치료제로 볼 때, 시부트라민의 시판여부에 대한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약물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의 관점에서 보면 시부트라민은 대부분의 경우 안전하지 않고 또 효과적인 사용을 담보하기가 어려운 약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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